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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From Book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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卜鉅一(1946.03.20~ )

한국의 소설가 겸 시인 겸 시사평론가.

충청남도 아산 출생. 이후 파주 근방의 미군기지촌에서 자랐다. 기지촌에서 자라며 영어를 익혔고,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온 원서들을 읽다가 SF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지촌에서 자란 경험은 『세네카 기지의 캠프촌』의 밑거름이 된다. 대전상업고등학교를 나온 후 서울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무역회사, 은행, 선박회사등에서 근무하다가 84년도에 사표를 내고, 87년에 데뷔를 한다.

등단하지도 않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문단 권력의 한 축인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된 사실은 한국 문단의 등단 구조를 파격적으로 뛰어넘은 사례로서 회자된다. 복거일 스스로는 "답안지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는데 글이 뛰어나다고 해서 장원으로 뽑아 준 당나라 시대의 시험관" 같은 일이라고 평했다.

복거일의 출간에는 당시 문지를 주도하던 김현의 영향이 컸다. 이후로도 김현은 복거일과의 사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유고 일기인 『행복한 책읽기』에도 복거일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복거일 소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겠기에 소개한다.


행복한 책읽기』에 실린, 복거일에 대한 부분
1987.01.06

4시경에 복거일씨가 들렀다. 언제 봐도 깔끔한 차림인데, 수줍어 하기는 계집애보다 더하다. 그가 하는 말로는, 대전상고를 나왔다고 하는데,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신동으로 꼽혔다고 한다. 하기야 대전상고를 나와 서울상대에 들어갔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들을 만한 것 또 하나: 가난한 사람들은 눈에 금방 띄는 환부(患部)이지만, 진짜 아픈 부분은 몸의 다른 곳이다. 그곳을 보지 못하는 한 총체성은 얻어지지 않는다. 사회라는 거대한 몸 속의 가장 아픈 부분은 정치와 돈이 만나는 자리이다.
그의 두 개의 계획: 어렸을 때 자란 파주 근방의 기지촌을 중심으로 한 중편 하나, 그리고 예비군 훈련에 관한 이야기 하나...."기지촌 이야기를 쓰려면 걸리는 것이 참 많아요. 우선 제 아버님만 해도 살아계시거든요...."

1987.04.18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지, 1987)를 여러 날에 걸쳐 정독을 했다. 역시 그의 재능은 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산문에 있다. 그의 시는 유럽적 의미에서의 묘사의 시다. 감정을 운문으로 표현한 것이 그의 시인데, 운문의 율격이 강하게 살아 있지 아니한 말이라 시의 울림이 덜하다. 그의 산문은 최인훈의 그것을 읽을 때처럼 단정하고 지적이고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서정적인 점도 최인훈과 닮았다. 그의 소설은 쥬네트가 곁다리 텍스트라고 부른 텍스트의 곁다리를 제대로 읽어야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1988.04.08

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문지, 1988)의 장점은 역시 절제다. 내용도 형식도 단아하게 절제되어 있는 이 소설은 그런 만큼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60년대의 휴전선 묘사로는 한수준을 이루고 있다. 오생근의 해설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복거일의 자신의 원천 중의 하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제일 환희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영어책이나 영어 편지를 잘 읽고 쓸 때이다.

1988.05.06

문지 시선에 자꾸 옥석이 뒤섞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꼬장꼬장해지는 것이 아니라 쉽게 양보하고 포기한다-고쳐야 할 관습이다. [....] 복거일의 [오장원의 가을]에 대해서는 "감상적인 제스처와 다소 통속적인 지혜"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성민엽의 지적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 같지만, 넉넉하게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1988.08.02

복거일의 "보수주의론"(문예중앙, 1988년 여름호)은 앎의 주체가 사회 변혁의 주체이며 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씌어진 글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따라 사회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회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혁의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서운, 다시 말해 반-이성적인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의 보수주의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의 한도 내에서라는 의미의 보수주의이며, 사회 개혁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점에서 비순응적 보수주의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라고 알려져온 것과 같다.

1989.08.13

복거일의 '임정'은 그 기도는 좋았지만 깊이는 없어 보였다. 그것이 텔레비전의 속성 때문인지 복거일의 준비 부족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다. 두드러진 것은 김구를 이승만보다 앞에 내세웠다는 정도겠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테러리즘의 옹호로 나갔더라면, 민족주의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릴라를 다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SF 팬덤 밖에서는 대단히 참신한 장르였던 '대체 역사 소설', 『비명을 찾아서』는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쳤고, 문단 내에서도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문열이 『비명을 찾아서』의 구조를 모방한 대체 역사 소설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를 내놓았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후로도 복거일은 뭇작가들의 선망어린 시선 속에 일간경제신문에 『역사 속의 나그네』를 연재하고, 1993년에는 한국 기성 작가 최초로 PC통신 연재를 하는 등(『파란 달 아래』) SF에 대한 한국 문단의 인식을 개선하는데 기여한다. 1990년대 초반 각 대학 국어문문학과와 평단에서 SF라는 장르의 가능성에 대한 담론이 오갔던 데에는 복거일의 공을 무시하기 어렵다. 이후 복거일은 듀나가 같은 출판사에서 『태평양 횡단 특급』을 내기 전까지, 문단에서 인정한 유일한 한국 SF 작가로 평가받았다.

비명을 찾아서』 이후로도 소설 창작을 꾸준히 해왔으나 그만큼의 평가를 받은 작품은 없다. 다만 장르문학에 여전한 관심을 보여, 창작 SF/판타지 소설에 대한 평론을 쓰거나 각종 장르문학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곤 했다. 행복한책읽기에서 출간된 창작 SF 소설 앤솔러지 『누군가를 만났어』(2007)에 추천사를 주기도 했는데, 이 추천사를 통해 복거일이 SF 장르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추측 가능하다.

개항 뒤 우리 사회는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현대적 사회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예술 분야에서도 그러했다. 안타깝게도, 과학소설만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과학소설이 현대 서양 문명의 본질적 특징이므로, 이런 사정은 더욱 안타깝다. 다행히, 근년에 젊은 작가들이 좋은 과학소설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 작품집을 만든 세 작가들은 대표적이다. 파란 싹들처럼 싱싱한 이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이 추천사에 따르면 복거일은 '현대 서양 문명의 본질적 특징'을 한국 사회에 이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던 듯 하다. 이러한 언급들은 과거 그가 주창하여 사회적 논란을 제기했던 "영어공용화론"과도 맥이 닿는다.

최근에는 정치 논객으로서 더 알려졌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하이에크나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신봉하여, 그 관점에서 쓴 평론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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